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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작품들 속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음악입니다. 화려한 영상과 배우들의 열연 못지않게, 영화의 감정을 밀도 있게 끌어올려주는 영화음악이 그 어느 해보다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펜하이머>, <듄: 파트2>, 디즈니 신작들에서는 감독과 음악감독의 협업, 몰입도 높은 사운드 디자인, 테마 음악의 감정 전달력이 강하게 부각되며,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2024년 영화음악의 흐름과 대표 이슈들을 작품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영화 그 자체보다도 음악이 독립된 감정선으로 기능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음악을 맡은 루트비히 고란손은 기존 영화음악의 틀을 넘어서,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역사적 비극성을 동시에 그려내는 감각적인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고란손은 이 영화에서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을 최소화하면서도 강렬한 현악 리듬을 중심으로 사운드를 구성했습니다. 특히 중첩되는 바이올린 레이어와 비정형 리듬을 통해 주인공 오펜하이머의 불안정하고 긴장감 넘치는 내면을 음악으로 완성했습니다. 전통적인 멜로디보다 감정 곡선을 따라 흐르는 음악은 놀란 감독의 시간과 심리의 편집과 맞물리며,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영화 후반부 핵실험 장면에서는 사운드를 과감히 삭제하거나 극도로 줄이는 방식을 활용해, 관객 스스로 소리의 부재를 인식하게 하는 반전 효과를 연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영화음악이 아닌, 장면 그 자체를 완성하는 ‘감정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란손은 이미 <테넷>, <블랙팬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으며, 이번 <오펜하이머>를 통해 한층 진화된 음악적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듄: 파트2>의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행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스 짐머는 전편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기존의 서사 구조를 뛰어넘는 음악 세계관을 확장해냈습니다. <듄> 시리즈는 거대한 스케일과 복잡한 정치·종교적 설정으로 유명한데, 짐머는 음악으로 이 서사를 정리하고, 감정의 결을 입혀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독창적인 악기 선택과 세계 음악적 요소의 접목입니다. 기존 서양 관현악에 국한되지 않고,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 중동의 전통 선율, 전자음악적 질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각 행성과 부족의 특색을 음악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이로써 관객은 시각 정보 없이도 사운드만으로 장소와 분위기를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한스 짐머 특유의 브라스와 드론음, 긴장감 있는 퍼커션은 전투 장면에서 폭발적인 몰입을 이끌어내며, 사막의 고요와 정적 속에서는 오히려 미니멀한 반복 구조의 사운드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번 <듄: 파트2>는 시네마 콘서트로도 기획될 만큼 음악 자체가 별도의 감상 콘텐츠로도 가치가 있으며, 한스 짐머의 음악 세계관이 대중에게 더욱 깊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디즈니의 2024년 신작들에서는 기존의 ‘귀에 익는 멜로디 중심’에서 벗어나, 캐릭터의 내면과 서사에 더 밀착된 음악 구성 방식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으로 <Wish>와 <엘리오> 같은 신작 애니메이션은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음악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디즈니 음악은 <알라딘>, <겨울왕국> 등에서 보듯, 개별 곡의 인기로 영화와 분리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신작에서는 내러티브 안에서만 완성되는 음악 구조가 강조되고 있으며, 이는 뮤지컬 장르보다는 오페라 형식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관객에게 주제곡을 반복해서 기억시키는 대신, 캐릭터의 감정선 변화에 맞춘 작곡으로 감정 몰입을 돕고 있습니다.
특히 디즈니는 최신작에서 인종, 문화 다양성을 반영한 음악적 실험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할리우드 스타일에서 벗어나, 라틴음악, 아프리카 리듬, 아시아 전통 선율을 믹스한 구성으로 새로운 글로벌 정체성을 담고자 합니다. 이는 어린이 관객뿐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이야기와 감성’ 모두를 고려한 디즈니 음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변화로 평가됩니다.
2024년의 영화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나 주제곡을 넘어, 영화 자체의 리듬과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심리와 편집을 연결하는 감정 음악을, <듄>은 세계관을 소리로 확장하는 서사 음악을, 디즈니는 정체성과 감성을 담은 음악적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이제 영화의 스토리뿐 아니라,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과 여운까지도 기억하게 됩니다. 영화음악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